한국비서사무협회에서 선정하는 ‘베스트 리더상’은 전국 10만 비서들에게 ‘존경하는 상사’를 추천받아 임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박인숙 국회의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이 역대 베스트 리더 수상자로 선정된 만큼 베스트 리더상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 기업 혹은 한 조직의 리더로서 사회에서 존경받고 귀감이 되는 리더만이 베스트 리더상을 수상할 수 있다.

성실과 신의로 이루어진 보령약국

보령 김승호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기업가의 존경을 받아온 큰 어른이다. 김 회장의 타고난 성실과 신의는 1957년 10월 보령약국의 창업 당시부터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고향인 보령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서 약국의 이름을 보령이라 짓고, 종로 5가의 5평짜리 보령약국을 열었다. 김 회장은 최소한의 이익을 붙여 약을 팔고, 고객이 원하는 약이 없으면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뱅뱅 돌며 약을 구해오기도 했다. 그는 상표 하나까지도 가지런히 정리할 뿐만 아니라 약의 복용법이나 사용법도 하나하나 알려주는 친절한 약국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보령약국은 서울 시민들은 물론 서울 외곽 지역의 사람들도 찾아오는 종로 제1의 약국으로 성장한다.

1962년 김 회장은 장사진을 이뤘던 보령약국을 보령약품이라는 도소매업으로 확장한다. 고객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약품 진열대를 설치하고 전표제를 시행하는 등 당시 약국 도소매상 최초로 고객과 약사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경영 방식을 도입한 것. 김 회장은 고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구해 주는 만능 성실꾼이자 직원인 약사들에게 어버이와 같은 신뢰를 얻은 참된 경영인이었다.

통찰력과 결단력을 가진 개척자

김 회장이 32세가 되던 1964년, 보령약품이 보령제약으로 변경되며 새 시대를 열었다. 의약품 도소매를 너머 직접 약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 ‘제약인으로서 결코 장삿속으로만 약을 만들지 않겠다’는 김 회장의 각오에 따라 보령제약은 첫 번째 의약품인 ‘오렌지 아스피린’을 생산한다. 김 회장은 의약품 개발부터 포장과 판매까지 깐깐한 시각을 가지고 꼼꼼한 관리를 하며 한국 제약 시장의 근간을 만든다.

김 회장의 투명한 생산 제조 관리 기법은 1967년 일본 류카쿠산사와의 용각산 기술 제휴로 이어졌다. 일본의 거대한 제약사 류카쿠산사가 한국의 작은 제약사 보령제약을 선택한 것은 김 회장의 통찰력과 결단력 때문이었다. 김 회장이 당시 건설 예정인 서울 성수동 공장의 설계도를 들고 류카쿠산사에 찾아간 것. 그로부터 몇 달 뒤 김 회장은 류카큐산사와 용각산 기술 제휴 계약을 체결하고 용각산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용각산은 현재까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며 보령을 대표하는 제품이 됐다. 용각산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비오테락사와 기술 제휴로 생산 중인 겔포스, 국산 신약 15호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 카나브로부터 뻗어 나간 카나브 패밀리의 성공엔 김 회장의 통찰력과 결단력이 있다.

공존과 공영 그 중심에 선 대들보

김 회장을 언급할 때 보령중보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보령중보재단은 2007년 김승호 회장의 ‘더불어 잘 사는 공존공영’ 정신 아래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이다. 보령제약 창업 50주년을 맞은 김 회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보령중보재단을 설립한 것. 김 회장은 보령중보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건강을 향한 인류의 꿈은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계속해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김 회장의 인본주의를 보여주는 보령의료봉사상 역시 김 회장의 주도로 1985년부터 매년 대한의사협회의 『의협신문』과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보령의료봉사상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벗이 되어 사회 발전에 헌신한 의사에게 헌정하는 상이다. 즉, 보령의료봉사상 역시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김 회장의 소망과 의지를 보여준다.

구순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 보령빌딩에서 사무를 보는 김승호 회장. 보령약국의 친절한 약국 아저씨로 시작해 한국 제약사의 한 획을 긋는 개척자를 넘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큰 어른까지. 김승호 회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김 회장이 추구하는 삶이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왼쪽부터 황보유정 매니저, 배현진 매니저, 손장완 실장, 남흥수 상무, 김슬 매니저, 김은영 팀장

MINI INTERVIEW

김승호 회장을 향한 전·현직 비서들의 회고

그동안 최측근에서 김승호 회장의 삶을 들여다본 보령의 전·현직 비서 여섯 명에게 김승호 회장과의 추억을 들었다.

2004년 보령에 입사해 15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김 회장을 모시는 중이다.

누군가 김승호 회장님이 어떤 분이시냐고 묻는다면 ‘배려’라는 말부터 떠오릅니다. 회장님은 누구에게나 배려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회장님께서 운동 삼아 산책하실 때 수행을 합니다. 비가 내린 어느 날 길에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어서 피해 가시도록 제가 안내를 하는데, 자꾸 저를 당기시며 본인께서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밟으셨습니다. 알고 보니 옆에 있는 제가 물이 고인 곳을 밟을까 봐 회장님께서 직접 물이 고인 곳을 밟으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김승호 회장님께서는 저희 비서들에게도 따뜻한 배려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회장님보다 정신력이 강한 분은 못 뵀습니다. 김승호 회장님의 의지와 정신력을 따라갈 사람은 없습니다.

2021년 12월부터 보령 비서팀에서 김승호 회장과 김은선 회장을 모시고 있다.

김승호 회장님께서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긴장하던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분위기를 풀어가고자 많은 덕담과 격려를 해 주셨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또한 김승호 회장님께서는 업무가 아직 서툰 저에게 항상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먼저 물어보시곤 하십니다. 회장님을 모신 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 주시는 회장님을 뵈면서 존경심이 듭니다. 사소할 수 있지만 늘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챙겨 주시기 때문이십니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저도 더욱더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김승호 회장님께서는 매일 출근길에 회사 근처에서 하차하시어 꼭 도보로 걸어서 출근하시고, 오후에도 시간을 내 매일 스트레칭 등의 가벼운 운동을 꼭 하십니다. 김 회장님께서 현재까지도 보령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계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체력 관리’ 덕분입니다. 저도 그런 열정을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8년 2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비서팀 팀장으로서 약 1년간 김승호 회장과 함께한 후, 보령홀딩스의 전체 자산을 관리하는 자산관리팀의 상무로 업무 중이다.

김승호 회장님의 첫 인상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자상하셨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도 남다르시고요. 상대방의 나이가 아무리 어릴지라도 항상 90도로 인사를 하시며 인자하게 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상함과 배려 속에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창의성이 들어 있으십니다. 김 회장님은 호기심이 많으셔서 작은 것도 꼼꼼히 살펴보시고 이를 통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십니다. 이런 것들을 보며 김 회장님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김승호 회장님은 6.25전쟁 때 학도병에서 교관과 장교로 선택을 받을 만큼 근면 성실하십니다. 김 회장님을 모시면서 다짐했습니다. 김 회장님의 창조적 열정을 제 삶의 신조로 살아갈 것입니다.

2009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비서팀 팀장으로 김승호 회장의 곁을 지킨 후 현재는 조직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윤리경영실의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회장님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본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매사에 이런 배려를 실천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회장님을 모시게 되면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배려는 어쩌면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순이 넘은 회장님께서 아직도 상대의 입장으로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하게 됩니다.

김승호 회장님은 언제나 창업주의 사회적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매사에 솔선수범하시고, 타인의 배려가 우선이라는 한결같은 긴장감으로 지금까지 헌신적인 경영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늘 회사가 우선이셨고, 항상 타인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회장님의 행복에 더 많은 투자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행복하세요~.

2015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김승호 회장을 모신 후, Rx 부문 전반의 사업을 담당하는 Chronic BD팀에서 근무 중이다.

김승호 회장님을 모시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요? 제가 회장님을 모실 때 학교 졸업 전에 취업이 결정돼 재직 중에 연차를 쓰고 졸업식에 참석했는데요. 그때 회장님께서 졸업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꽃을 집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축하해 주시리라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무척 놀라고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또한 김 회장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셔서 늦게 퇴근하셨습니다. 회장님의 이러한 근면 성실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김승호 회장님을 모신 일은 제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2016년 9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김승호 회장과 김은선 회장 곁을 지킨 후 보령인을 선발하는 채용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김승호 회장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회사를 사랑하고 아끼십니다. 김 회장님께서 5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오직 회의와 보고로만 하루를 보내신 적이 있는데요.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식사도 보고 받으시면서 드실 정도로 업무에 열정이 가득하셨어요. 80세가 넘으신 나이에 너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당시 25세인 저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빠진 적이 있을까?’ 하는 큰 감동을 받았어요.

또한, 어느 날 회장님께서 본인 명함에 카나브 PM을 넣어 달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카나브 MR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본인이 직접 PM이 되시겠다고 하시면서요. 회장으로 불리는 것보단 PM이 되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은 그 열정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어요.

김승호 회장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큰 영광이었고, 가장 가까이에서 회장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고 느꼈습니다. 회장님처럼 언제나 보령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보령에 보탬이 되는 보령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