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행복한 결말이 무엇일지 가늠해보곤 한다. 물론 답은 쉽고 간단하다. 돈 많이 벌고 사회적 명예를 얻는 이상향적인 가치관이랄까. 이는 경제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고찰을 차치하고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가 보통 아는 기업이란 이름의 조직 자체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점과 일맥상통하다. 일본의 대표적 성공기업으로 꼽히는 전자 부품업체 '일본 전산'의 사장 나가모리 시게노부 씨 또한 기업경영에 있어 흑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어떤 일보다도 적자 탈피를 최우선 목적으로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적자만큼 나쁜 게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될 터다.

그런데 작금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특이하다. 대부분 기업의 존폐를 위협받을 만큼 적자를 계속하고 있고 또 이를 감내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수많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공통분모는 하나다.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 때문이라고.

실제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신약 관련 연구개발(R&D)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근래 새로운 화장품 같은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많지만 근간이자 고부가가치 창출과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신약만큼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껏 신약 개발보다는 제네릭(복제약) 중심의 이윤창출 기조에서 탈피한 행보다.

그런데 요새 이같은 신약 연구개발 붐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실적부진으로 연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엔데믹 이후로 예측되는 내년에 접어들면 수많은 적자 바이오 기업들이 자금문제로 수장될 것으로도 내다볼 정도다. 자본시장에서 경고했던 투자 경색 등 후폭풍도 지속되고 있다. 많은 제약사들이 이익감소에 적자는 물론 일부 바이오기업의 경우 특성상 초기 인프라 확충 등까지 겹쳐 기업 존폐에 대한 위협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기업의 태도다. 적자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인만큼 당분간의 부진이나 적자를 감내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른바 '계획된 적자'다.

바이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흠칫 놀라기도 한다. 자신들이 개발하는 약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 마냥 희망찬 애찬가만 기본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약 개발로 쌓인 적자내지 빚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당 개발만 끝나면 로또 당첨 그 이상의 인생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까닭이다.

미련하고 무식한 방법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다. 이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면 더 그렇다. 우스갯소리로 신약개발은 도박과도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모 아니면 도라는 큰 기회비용 때문일터다. 실제 신약 1개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선 인고의 시간이 불가피하다.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도 문제지만 최소 수년이상이 우습게 소요되는 데다 초기 신약물질후보를 발굴하는 것마저도 쉽지 않다. 설령 발굴해서 다음 단계인 임상 등으로 진행되더라도 안심하기 이르다. 신약으로 오롯이 탄생할 가능성이 고작 5%도 채 되지 않는다. 수천억 원을 쏟아도 결국 공염불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럴진대, 무릇 신약개발 투자로 생기는 손실을 두고 '계획된 적자'라고 설명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단순히 응원만 하기에도 부담스러워진다. 한편으론 또 고심하게 된다. 생존도 생존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마냥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박아닌 도박을 단행하는 이들 기업을 말릴 자격이 있는지도 망설여진다. 우리는 이들 기업의 부진을 꼬집을 수 없는 것일까. 또 이들의 적자를 두고 죄악이라곤 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바란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성과를 낼 때가 됐다는 혹자의 비판도 있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신약 개발에 대한 순수한 의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계획된 적자’가 ‘계획된 죄악’이 되지 않도록, 신약개발 과정에 대한 과학적이고 투명한 설명과 소통이 반드시 지속되길 기원한다. 이러한 단기적 차원의 신뢰와 정성들이 모인다면 단기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신약개발이 한낱 도박으로 치부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통과 신뢰야말로 이해관계자들이 지난한 신약개발의 과정을 인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답일지 모른다. 과학기술의 중추와도 같은 신약개발 분야에 뜬금없이 ‘신뢰와 소통’이 웬말인가 싶지만, 결국 신약개발도 사람이 하는 것임을,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끝내 완수할 수 있는 과제임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