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 깨닫게 한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교수의 ‘마지막 손길’ 대상 선정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곳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 있다.’ 작가 피천득은 ‘수필’이라는 글에서 수필을 그렇게 정의했다. 12월 6일 보령빌딩 중보홀 강당에서는 의사들에게 마음의 산책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18회째를 맞는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의사들이 직접 쓴 수필 문학을 통해 생명 존중과 사랑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보령이 2005년 처음 제정한 상이다. 18년간 15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기존에 작가로 등단한 의사도 다수다.
이번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심사 결과,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작품 ‘마지막 손길’이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18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7월부터 9월까지 작품을 모집하고 한국수필문학진흥원의 예심과 본심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그 결과 대상 1편, 금상 1편, 은상 2편, 동상 5편 등 총 9편이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미래아이산부인과의원 허지만 의사의 ‘첫 수술’은 금상의 영예를, 중앙대학교 광명병원 최상림 의사의 ‘울었어?’ 와 해맑은소아청소년과의원 배선영 의사의 ‘풍선지몽(風船之夢)’은 각각 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밖에 마리본산부인과의원 유새빛 의사의 ‘너의 의미’, 도담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박미희 의사의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늘편한내과의원 이영재 의사의 ‘출근길에’, 구완서내과의원 박라영 의사의 ‘똥에 관하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이시진 의사의 ‘소생실 밖에서 기다리며’가 동상에 선정되었다.
장애·비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상 작품집과 ‘수어 오디오북’ 제작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고문이자 이번 심사를 이끈 손광성 심사위원장은 격려사를 통해 “수필은 허구가 아닌, 자신의 체험을 통해 자득한 지혜를 푸는 글로, 인격ㆍ인품ㆍ인생을 잘 나타내는 글.”이라며 “매번 심사에 들어감에 있어 감각 있고 개성 있는 글들을 마주하는 기쁨이 크다. 문학상의 역사가 한 해 두 해 쌓이는 걸 보면서 이 상의 권위가 점점 중요해지고 향상됨을 느끼며 심사를 맡은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수필문학상의 의의를 전했다. 심사평에 앞서 의업을 벗어나 좀 더 인간다운 고민, 이를 통한 깨달음으로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는 바람도 곁들였다.
대상에 선정된 고경남 교수의 ‘마지막 손길’은 암 투병 중인 한 소녀가 친오빠를 원수처럼 미워하면서도 오빠의 결혼식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항암 치료를 결심하고 자신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과정을 절제된 문장으로 형상화해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금상 수상작인 ‘첫 수술’은 의사로서 맡게 된 첫 수술의 중압감과 의미를 어릴 적 세발자전거를 타다 두발자전거로 갈아타는 과정에 비유, 몽타쥬 기법을 이용해 한 단계 도약하는 어려움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상 수상자인 고 교수에게는 상패와 금메달이 수여됐다. 이번 수상작들은 책자 형태의 작품집으로 제작될 뿐 아니라 장애·비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어 오디오북’으로도 제작된다. 특히, 의사들이 직접 자신의 수필 작품에 대한 내레이션에 참여해 의료 현장에서 겪었던 진솔한 생각과 감동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대상 수상자인 고경남 교수에게는 수필 전문 잡지인 『에세이 문학』을 통해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특전이 제공된다.
MINI INTERVIEW
제18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수상자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우선 대상을 수상하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큰 사랑을 받게 돼서 너무 감사드리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좀 일찍 와서 이번에 수상하신 작품들을 쭉 읽어봤는데 다들 너무 좋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대상을 받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웃음).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수필 제목이 ‘마지막 손길’입니다.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셨나요?
소아 혈액 전문의이다 보니 주로 소아 환자를 진료합니다. 진료하다 보면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만, 시간이 흘러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 손길’도 제 이야기가 아닌, 제가 치료했던 환자의 이야기인 만큼 이걸 소재로 삼는 게 맞나 끝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이 결국 환자의 인생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가장 아리게 남아있는 환자에 대한 기억을 이번에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이 의사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해 주세요.
심사위원장님께서 의사들이 의업에서 벗어나 시야를 좀 넓혀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수필은 ‘what’이 아닌, ‘how’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앞으로 수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핵심은 현장에서 환자를 더 잘 돌보는 데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합니다. 저희 의사들에게 생각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사람과 삶에 대해 되짚어보는 상을 마련해준 보령에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