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디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새 길이 열리곤 한다.
의료사각지대를 방문하며 첫발을 내디딘 고용곤 병원장의 의료봉사는
어느덧 동대문구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부터 관절치료를 받을 길이 없는 네팔 오지 주민에게까지 그 발길이 뻗어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사랑을 전하면서, 그는 오늘도 어제보다 따뜻한 미래로 간다.
보령의료봉사상은 국내외 의료취약지역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묵묵히 자신의 인술과 사랑을 베풀며 헌신하는 ‘이 땅의 슈바이처’라 할 수 있는 의료인·의료단체를 발굴해 시상하고 있습니다. 1985년 보령과 대한의사협회 의협신문이 공동으로 제정해 매년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참된 의료인상을 정립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고용곤 병원장은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눈비 내리는 날에도, 햇볕 쏟아지는 날에도,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절실한 발걸음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하루를 값지게 보내는 그만의 비결이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는 그가 수술을 후원하는 저소득층 환자들도 포함돼 있다. 고된 노동으로 관절이 상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수술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2013년부터 백 명이 넘는 환자들이 그의 인공관절 수술 후원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바쁨에 기쁨이 가득한 이유다. “관절질환은 경제적 문제와도 관계가 깊어요. 관절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생기는 질환인데, 몸을 많이 쓴다는 것 자체가 형편이 어려울 가능성을 내포하니까요. 관절 척추 전문의로서 그분들을 도울 방법을 자연스레 고민하게 됐어요. 환자들 덕분에 성장해 온 병원이니 그렇게라도 제가 받은 걸 돌려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고려대에서 교수로 있는 제 친구가 출퇴근할 때 동대문구를 지나는데,
그 지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70대 이상 어르신들 얘기를 어느 날 하더라고요.
연세도 연세지만, 무거운 걸 싣고 나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관절 건강이 좋지 않을 거란 판단이 들었어요.
동대문구와 이 일을 함께 진행하면 좋겠다 싶어 업무협약을 맺게 됐죠.
그의 나눔은 점점 더 세심해진다. 저소득층 이웃 가운데서도 수술 후원이 더 시급한 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지난해 7월 그가 병원장으로 있는 연세사랑병원은 동대문구와 업무협약을 맺고, 1년간 관내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 12인(매월 1인)에게 관절질환 수술 및 입원진료비, 수술 전 외래진료비등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리에 그가 나눔의 새 등불을 밝힌 셈이다. “고려대에서 교수로 있는 제 친구가 출퇴근할 때 동대문구를 지나는데, 그 지역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70대 이상 어르신들 얘기를 어느 날 하더라고요. 연세도 연세지만, 무거운 걸 싣고 나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관절 건강이 좋지 않을 거란 판단이 들었어요. 동대문구와 이 일을 함께 진행하면 좋겠다 싶어 업무협약을 맺게 됐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는 해외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추석 연휴엔 산악인 엄홍길 씨와 함께 네팔 카트만두와 남체바자르(해발3,440m)로 직접 날아갔다. 부유층 환자들은 유럽이나 호주에서 치료받고 중산층 환자들은 인도의 병원을 찾아가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길이 없는 게 네팔의 의료 현주소였다. 그곳에서 보낸 5박 6일 동안 그는 현지 곳곳을 다니며 관절질환으로 고생하는 히말라야 인근의 환자들을 만났다. 고산병으로 내내 고생했지만, 그들을 도울 수 있어 여간 보람되지 않았다.
“저를 만나기 위해 꼬박 이틀을 걸어 온 환자도 있었어요.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그때 만난 환자들 가운데 세 분은 2주 뒤 한국으로 초청해 관절 수술을
해드렸어요.
회복 후 고국으로 돌아갈 때, 제 목에 ‘카타(축복을 기원하는 스카프)’를 둘러 주시더라고요. 그분들의 진심이 전해져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네팔과 관련된 나눔은 그게 끝이 아니다. 에베레스트 산악지역의 응급환자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산악지역 구급차를 두 대 기증했고,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설립한 네팔의 학교에 2억 원의 교육지원금도 기부했다. 그의 봉사는 애초의 계획보다 늘 ‘오버’된다. 애초 산악 구급차 한 대를 기증하려 했으나 막상 가보니 상황이 열악해 한 대를 더 기부하는 식이다. 그게 싫지 않다. 싫기는 커녕, 미처 생각하지 못한 틈새들을 메울 수 있어서 매번 마음이 참 좋다.
낙후돼 있으니 언제 한 번 와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승합차를 타고 진도에 가서 섬 곳곳을 돌며 진료 봉사를 했어요.
손수 기른 농작물이며 꾹꾹 눌러쓴 손 편지 같은 것들을 주셔서
마음이 참 따뜻했던 기억이 나요.
이 삶이 된 21년
“연세사랑병원을 2003년에 개업했고, 그해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했어요. 저에게 진료받은 환자가 전남 진도 분이었는데, 그곳의 의료시설이 낙후돼 있으니 언제 한 번 와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승합차를 타고 진도에 가서 섬 곳곳을 돌며 진료 봉사를 했어요. 손수 기른 농작물이며 꾹꾹 눌러쓴 손 편지 같은 것들을 주셔서 마음이 참 따뜻했던 기억이 나요.” 2005년부턴 진도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의료봉사를 했다. 충남 당진, 전남 임자도, 충남 금산, 충남 예산, 경남 산청, 강원 원주, 전남 담양, 전북 장수, 충남 부여 등 대한민국의 의료사각지대를 두루 찾아다녔다. 2020년엔 홍수 피해지역인 강원도 철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눈 밝게 알아보고, 발 빠르게 달려가 힘을 보탰다.
진도 출신 환자가 의료봉사로 이끈 주인공이라면, 엄홍길 대장은 의료봉사의 지평을 넓혀준 장본인이다. 15년 전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엄 대장과 인연을 맺은 그는 2012년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무릎관절염 환우회 청계산 등반’ 행사
후원을 시작으로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DMZ 평화통일 대장정’ 행사를 여러 차례 후원했다. 2016년엔 재단법인 엄홍길
휴먼재단을 통해 산악인 유가족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등반 중 세상을 떠난 산악인들의 가족에게 작게나마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상대방이 제안해 온 일이 ‘좋은 일’이다 싶으면, 그 인연을
언제든 기꺼이 이어간다. 사랑의 헌혈캠페인,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아동학대 예방캠페인, 유엔난민기구 홍보 캠페인….
그가 참여해 온 것들이다. 시간이 아무리 부족해도, 나눔을 위한 시간만큼은 절대 아끼지 않는 그다.
의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에 속해요.
그러니 봉사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의사로서의 책무라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해요.
앞으로 제가 현장에서 수술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쯤 남은 것 같아요.
저에게 남은 그 시간을 제가 가진 걸 나누는 데 쓰고 싶어요."
그는 의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의료의 샘에서 사랑의 물을 긷는 사람. 그의 손에 들린 두레박에 희망의 샘물이 찰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