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醫窓)'으로 본 인간의 삶,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 개최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 현장
12월 2일, (주)보령 중보홀에서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의료 현장에서 마주한 다양한 경험을 글로 나누기 위해 마련된 문학상입니다. 지난 21년 동안 많은 의료진이 각자의 현장에서 느낀 순간과 이야기를 수필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 현장을 소개합니다."
2025년에도 높은 경쟁률 속에서 진정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총 76편의 응모작 가운데 대상 1편을 비롯해 금상 1편, 은상 2편, 동상 5편이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진환 선생님의 『자살과 빈 의자, 그리고 가디건』은 우울증으로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생명 존엄의 가치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환자의 내면 붕괴와 회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의술이 단순한 치료를 넘어 생명을 지탱하는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의 사투를 그려낸 『고요와 아수라의 경계에서』 (추새로병원 조영준)가 금상을 수상했으며,
은상에는 의료인의 역할과 마음가짐을 조명한 『꽃을 든 남자』 (온유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선자연),『나를 왜 살려냈나요?』(유성선병원 박민)가 선정됐습니다.
동상으로는『구원의 손길』(서울아산병원 김보규),『침묵하는 활시위의 염원』(하나로의료재단 김하연),『겨울의 끝에서』 (포항여성병원 배철성),『구원의 실마리』(서울아산병원 최세훈),『아침의 가족』(중앙대학교병원 서정국)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박양근 문학평론가
박양근 문학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총평을 전했습니다.
응모작들은 의사라는 직업적 시선, 곧 '의창(醫窓)'을 통해 인간과 삶을 성찰한 서사적이자 윤리적 수필들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의술의 창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희망'이라는 주제의식이 공통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 이번 심사 기준은 다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의료인의 시선으로 생명에 대한 휴머니즘을 얼마나 깊이 있게 서술했는가.
둘째, 문학적 은유와 표현을 통해 내적 의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냈는가.
셋째, 죽음보다 의술이 지향하는 생명과 희망을 어떻게 제시했는가.
넷째, 의료 현장의 다양성과 사실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했는가.
의사의 수필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수상작들은 의료 현장의 진실성,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생명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균형 있게 담긴 글들이었습니다.
특히 대상작은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환자의 감정과
의사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대상 – 『자살과 빈 의자, 그리고 가디건』
이진환 선생님 /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제 수필은 의자 두 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료실에는 언제나 환자의 자리와 의사의 자리가 있죠. 그런데 어느 날, 자살을 암시하던 환자가 다녀간 뒤 꾼 꿈속에서, 저는 그 환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 의자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막막함, 그 절망감이야말로 그날 그 환자가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환자들의 자리에 진심으로 앉아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상은 그런 마음을 더 잊지 말라는 의미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끔 제 글을 읽고 내원하시는 분들이 ‘그 글 속의 환자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라고 말씀하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꼭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특별합니다.’ ”
Q. 수상 소감과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이 이 상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저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고, 이번 작품도 그 경험에서 비롯됐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자살은 늘 화두입니다. 환자의 자살은 깊은 상처로 남고, 그 상처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제 나름의 마음이 이 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Q. 이번 수필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기에, 그 고통을 ‘이해한다’는 말에는 늘 조심스러움이 따라야 하죠.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끝없이 가까워지려는 노력, 저는 그것이 사람 사이의 중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Q. 의사로서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증상’ 같은 것입니다. 멈출 수 없고 반복되며, 그 안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니까요. 글을 쓰는 과정은 세계를 다시 읽고,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좋은 의사는 좋은 독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수상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앞으로 이 문학상에 다시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이유를 되새기게 됐습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은상 - 『나를 왜 살려냈나요?』
박민 선생님 / 유성선병원
“저는 신경외과 의사로 뇌혈관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환자를 수술로 살려냈습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회복실에 찾아갔죠. 그런데 그 환자는 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살하려고 그랬던 건데, 왜 살려놓고 돈을 내라고 해요?’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충격이었고, 죄책감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멍해졌어요. 그 이후로 제 진료가 무엇이었는지, 환자를 진짜로 안다는 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더 좋은 글 많이 쓰겠습니다.”
동상 - 『침묵하는 활시위의 염원』
김하연 선생님 / 하나로의료재단
“환자를 대하지 않는 병리과 전문의로서 최전선에 계신 의사 선생님들에게 항상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수필은 제가 유일하게 환자분을 대할 수 있었던 진료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환자들에게 늘 침묵을 유지하는 저와 같은 의사들이 실제로는 환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저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써 내려가겠습니다. “
동상 - 『겨울의 끝에서』
배철성 선생님 / 포항여성병원
“어제 수술 몇 건 마치고 새벽에 회진 돌고 포항에서 열차 타고 올라왔습니다. 처음으로 KTX 경로우대 적용을 받았습니다. 예매창에 ‘경로’ 체크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황금기는 끝난 건가?’ 그런데 오늘 시상식에 서서 보니 이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늘이 나의 화양연화구나.’ 오랜 시간 의사로 살아오며 진료실에서 겪었던 수많은 장면들, 그리고 스쳐 간 환자들 그 조각들을 한 편의 글로 묶어낼 수 있었던 이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수필을 통해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이렇게 독자와 나눌 기회까지 얻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상 - 『구원의 실마리』
최세훈 선생님 / 서울아산병원
"이번 수필은 ‘유미’라는 한 젊은 여성 환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은 시간 동안 직접 뜨개질한 작은 선물들을 주변에 하나하나 나눠주며 이별을 준비했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죽음을 앞둔 환자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오랫동안 씨름했습니다.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저 나름의 응답이자, 고백입니다.
여러 번 도전했던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에서 이렇게 수상하게 되어 감격스럽고, 글을 읽은 분들 모두가 각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동상 - 『아침의 가족』
서정국 선생님 / 중앙대학교병원
“이 글은 저, 그리고 저희 가족, 특히 갓 돌이 지난 딸 ‘하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투병하셨고, 제가 의대생일 때 간병을 맡았습니다.
트라키오스토미(기관절개술)를 직접 경험하며
‘가족 안의 의사’로서의 시간을 살았죠. 할아버지 이름에 ‘아침 조(朝)’ 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아버지, 저, 제 딸까지 이어졌고, 그래서
제목도 『아침의 가족』이 됐습니다. 언젠가 딸이 자라서 이 글을 읽게 될 날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그때 제가 하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2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상작 9편에는
생명과 인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의료진들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들이
수필이라는 형식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기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번 수상작들이 많은 독자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