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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위에 피어난 어머니 숨결』

신년 수필 고단한 삶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다

삶의 흔적은 때로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지만, 그 속에 스며든 따뜻한 기억은 열 마디 위로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남습니다. 수필 『흉터 위에 피어난 어머니 숨결』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한 기록으로 어머니 숨결처럼 잔잔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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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문예지 ‘문예바다’에 소개된 수필 『흉터 위에 피어난 어머니 숨결』은 보령중보재단 고경환 이사의 등단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눈 애틋한 추억을 서정적으로 담아내며, 인간의 존엄과 치유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저자인 고경환 이사는 복지재정·복지국가 비교 등 보건복지 정책 전반을 연구해 온 전문가이자, 2014년부터 보령중보재단을 통해 아동·청소년 사회공헌에 앞장서 온 실천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번 수필에서 정책 전문가의 냉철한 시선과 문학적 감수성을 결합해 보건·의료 현장의 숭고한 헌신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흉터 위에 피어난 어머니 숨결

고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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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쪽 다리에 남은 흉터 하나.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끓는 국물이 피부를 덮치던 그날,
고통은 살을 뚫고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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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흉터는 살갗 위의 흔적이 아니라,
어머니가 내게 남긴 가장 고요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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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척 집에서 끓는 개고기 국물이 왼쪽 다리에 쏟아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날 밤부터 통증 속에 다리는 부어올랐고, 알 수 없는 고열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고름이 차오르고, 통증은 마치 뜨거운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했다. 그 고통은 어린 마음을 조이는 두려움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물장난치며 뛰어놀았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 이후, 천진난만하던 웃음은 사라지고 나의 세상은 온통 쓰라린 통증에 잠겼다. 병세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님의 얼굴엔 날이 갈수록 그늘이 깊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바르며 다리를 살피는 손길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은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다. 치료를 위해 먼 한약방을 찾아가는 길도 익숙해졌다. 엄마와 숙모는 번갈아 가며 나를 업고 다니셨다. 당시 시골엔 병원이 없었다. 병원은 죽을 병에나 가는 마지막 길처럼 여겨졌다. 작은 상처도 부모님의 손과 민간요법으로 다스려야 했다. 엄마는 느릅나무 뿌리를 찧어 상처에 얹었다. 그 손이 상처 위에 닿을 때면, 서늘한 감촉과 함께 생명의 숨결이 스며들었다. 그러면 어느새 고름이 스멀스멀 밀려 나왔다.

가장 끔찍했던 건, 한약방에서 받아온 조약을 고름이 찬 배농 구멍에 깊숙이 넣는 치료였다. 나는 약 봉투만 봐도 몸이 움츠러들었고, 밤에도 그 생각에 시달리며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엄마도 여러 번 시도하다 포기하신 듯했다. 그러던 어느 한여름 밤, 깊은 잠에 빠진 나를 엄마는 단단한 결심으로 조약을 살며시 배농 구멍에 비벼 넣었다. 순간, 다리에서 불꽃이 튀듯 통증이 몰려와 나는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화들짝 몸을 일으키며 비명을 터뜨리자 약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아이의 비명 앞에서 애써 참던 어머니의 눈물은 끝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훗날, 엄마는 그날을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정말 마음껏 울었단다. 빗소리가 다 덮어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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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로 나는 엄마의 손길을 피했다. 약 봉투가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도 펄쩍 뛰었다. 몸은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엄마의 따뜻해야 할 손길은 통증의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는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라고 말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고름은 정강이뼈를 타고 번졌고, 다리는 갈수록 통증으로 무겁고 뜨거워졌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모내기를 마친 어느 날, 닭백숙 끓는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나는 그 냄새에 설렘을 느꼈지만,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는 염증이 있으니까 닭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엄마의 눈빛은 단호했다. 닭고기를 먹지 못하는 서러움보다,
차갑게 들린 엄마의 말씀이 더 섭섭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엄마가 국물을 살짝 맛보는 모습을 보았다.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맛보면서 왜 나는 안 돼?”
엄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억울함과 슬픔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우는 나를 안고, 엄마도 함께 우셨다. 그리고 연신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단호한 말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여전히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픈 날들이 이어지자, 마음속엔 질문이 자라났다.
도대체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언제쯤 이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마침내 병명이 밝혀졌다.
“골수염입니다.”
의사의 그 한마디는 오랫동안 나를 긴장시켰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켰다.
희망이 보여서 가슴 속으로 안도하였다. “이렇게까지 고생했는데 결국 이거였나?”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에 비해 큰 병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린 마음을 위로했다.
결국 상처는 차츰 회복되었지만, 흉터는 남았다.

나는 흉터를 더듬을 때마다, 눈물로 상처를 쓰다듬으며 부처님께 기도 올리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린다. 느릅나무 뿌리 냄새, 조약의 따끔한 감촉, 그리고 말없이 약을 바르며 소원을 빌던 손길 ……
이제 나는 그 흉터를 ‘상처’가 아닌 ‘기억의 문장’으로 읽는다.
문득 그 자리를 어루만질 때면, 어머니의 기도가 붓 자국처럼 되살아난다.
흉터는, 삶이 내게 속삭인 가장 조용한 기도이자, 어머니가 남기고 간 사랑의 시(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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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수필은 「문예바다」 2025년 가을호 등단작으로, 작가는 보령웹진 독자들을 위해 치유에 대한 깊은 사유와 따뜻한 제언을 담은 에필로그를 덧붙였습니다.

  • [에필로그] 엄마의 약손, 그리고 우리의 약속

    상처의 기억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한 사회가 아픔을 어떻게 돌봐왔는지를 비추는 작은 창이 된다.

    나는 그 시절의 고통을 통해,
    사랑의 손길과 더불어 과학과 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인간의 회복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약과 의학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사회가 함께 지는 약속이며,
    우리 모두가 의지하는 은은한 공동의 등불이다.

    보건 ·의료 ·제약의 역할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넘어,
    시민의 존엄을 지키고
    사회가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을 세우는 데 있다.

    이 글은 그런 신뢰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치유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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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글을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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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을 설계하고 분석해 온 연구자입니다.
현재는 보령중보재단 이사로도 활동하며 재단 운영 전반을 자문하고 있습니다. 제도와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해왔지만,
연구와 함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Q2. 보령중보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랜 기간 사회복지 정책을 연구하며, 제도와 데이터가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구현되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보령중보재단이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며 아동과 지역을 꾸준히 살피는 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동안의 연구 경력과 재단에서의 현장 경험이 결합한다면 보다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인연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3. 연구 활동과 함께 수필을 꾸준히 써오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정제된 언어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생각들이 남습니다. 그런 감정이나 기억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글을 쓰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필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게는 글쓰기가 생각을 정리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Q4. 이번 수필을 쓰신 계기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시나요?

어느 날 문득 다리에 남아 있는 흉터를 보게 됐습니다. 그 흉터를 보면서 아팠던 기억보다도, 그 곁을 지키던 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은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수필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삶에 남아 있는 기억 하나쯤 떠올리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상처 자체보다,
그 시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Q5. 복지 연구자로서의 경험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시나요?

사회복지와 수필은 본질적으로 뿌리가 같습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연구실이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출발합니다.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공공부조나 사회보험 같은 국가 제도의 딱딱한 메커니즘을, 독자들이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자로서 쌓아온 논리적 체계는 글의 단단한 뼈대가 되어주고, 복지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연들은 글의 생명력이 됩니다. 저에게 글쓰기란, 제가 연구해온 복지적 가치를 문학적 방식으로 세상에 전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 실천’입니다.

Q6. 복지 전문가이자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등단작 외에도 이미 40여 편의 수필 집필을 마쳤으며, 조만간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그동안 복지 전문가로서 정부 예산이 투입된 수많은 연구 보고서를 발간해 왔지만, 이제는 오롯이 저만의 문장으로 채운 수필집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완성된 수필집은 무료로 나누며 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흉터 위에 피어난 어머니 숨결』은
상처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며
인간의 존엄과 치유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누군가의 건강한 일상을 위해 애쓰는
보령 가족 여러분의 진심 또한,
세상 어딘가에서는 따뜻한 힘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이 2026년을 시작하는 보령 가족 여러분에게
위로와 자부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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