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Insight제41회 보령의료봉사상 이상권가정의학과의원 이상권 원장 인쇄



진료실 밖에도 그의 진료실이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있는 이상권가정의학과의원.
2001년 개원해 20년 넘게 지역민의 건강을 보살펴온 곳이다.
목요일 점심시간,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아온 어르신 환자까지 다 살핀 뒤
이상권 원장은 서둘러 가방과 외투를 챙겨 든다.



“목요일 오후면 병원 문을 닫고 왕진하러 갑니다. 지역사회의료돌봄사업의 일환으로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 가정을 찾아가 살펴드리고 있거든요. 예전에야 봉사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방문 진료는 국가에서 진료비 보장을 해주거든요. 그래서 봉사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워요.”

진료실로 찾아오는 환자를 돌보는 것과 비교하면 방문 진료는 훨씬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상권 원장은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조차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젓는다. 이날 이상권 원장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85세 어르신의 집을 찾았다. 간호사인 아내 진경아 씨와 사회복지사들도 뒤를 따랐다. 어르신은 안부를 묻는 통합돌봄사업팀 직원들에게 “내가 사람을 잘 기억 못 한다”라고 미안해한다. 그러면서도“그래도 우리 원장님 얼굴은 기억난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이상권 원장은 어르신의 맥박과 체온, 건강 상태를 살핀다. 추가적인 질환이 나타날 위험은 없는지 문진도 꼼꼼히 한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대답을 듣기까지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는 법이 없다. 진료를 마친 뒤에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어르신이 약을 꼬박꼬박 드셔서 그래요. 정말 잘하셨어요”하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건강과 관련해 주의 사항을 몇 번씩 당부한 뒤에야 이상권 원장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봉사의 대물림


  • 이상권 원장이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첫 번째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이상권 원장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태어난 불우청소년과 교육 기회를 잃은 만학도를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 설립자이며 교사였다. ‘인간 상록수’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외계층을 가르치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이상권 원장은 자신이 커서 의사가 되면 집안에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가 당뇨와 간경화로 고생한 것도 진로에 영향을 주었다.



  • 이상권 원장은 이후 1994년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4년 뒤인 1998년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농촌 봉사 활동을 해오던 것에서 발전해 이상권 원장은 2005년부터 전주시의사회 산하 봉사단체인 사랑나눔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했다. 특히 그는 “의사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에 대한 영수증을 발행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모아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2016년 사단법인 이웃사랑의사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 현재도 이상권 원장은 (사)새힘나눔(환자후원회)을 통해 예수병원을 중심으로 암환자와 4대 중증 환자를 보살피고, 전주시자원봉사센터와 노인의료돌봄통합지원사업을 통하여 지역사회돌봄에 참여하고, 전주연탄은행에서 지역사회 에너지 빈곤 세대를 돕고 있다. 의사의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는 의료봉사 활동을, 온기가 필요한 곳에는 그에 맞는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목이 마른 듯 그는 봉사 활동의 영역을 계속 넓혀간다.







    • 한국에서 세계로
      병든 이들을 찾아 떠나다


    2009년부터 15년 가까이 이상권 원장은 매해 비행기 표를 손에 쥔다. 교회 청년들과 필리핀 단기 해외선교를 떠났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해외의료봉사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간 이상권 원장은 필리핀, 대만,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 등 해외 곳곳의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갔다. 캄보디아에서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린 적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한 여성이 두 살배기 아기를 안고 진료소를 찾아왔어요. 아기는 이미 팔다리가 축 처지고 숨을 못 쉰 채 제 품에 안겼습니다. 아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눈에는 ‘끝났구나’하는 절망이 서려 있었습니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어 상태를 살폈더니 기도 폐쇄로 인한 질식으로 보였어요. 지체 없이 하임리히법을 실시했죠. 그러자 기적적으로 아기가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일이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순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많은 아이가 응급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죽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해외에 갈 때마다 하임리히법과 위생교육 관련 포스터를 만들어 가지고 갔습니다.”



    이상권 원장의 눈에 해외 빈민국의 모습은 전쟁 후의 우리와 닮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다행히 2019년 전라북도해외의료봉사단이 발족하고, 전라북도의사회를 비롯한 의약 단체와 전북자원 봉사센터가 대대적인 해외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부터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혔을 때도 구호 물품을 모아 해외로 보냈다. 의사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만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이상권 원장이 있다. 그리고 그의 발길이 불씨가 되어 더 큰 단체가 조직되고, 체계적인 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걸어갈 의료봉사의 길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상권 원장은 병원에서 환자를 만난다. 점심과 저녁, 진료 시간 중간중간 짬이라도 나면 그때는 법인을 비롯해 의료봉사 활동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한다. 의료봉사를 가기 전 필요한 물품을 체크하고,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사소한 일 하나까지 꼼꼼히 살핀다. 쉴 틈 없이 시간을 쪼개어 봉사에 힘을 쏟은 탓에 2019년에는 황반변성까지 얻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지역사회가 더욱더 건강하고 따뜻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시도 손을 멈출 수 없다. 그러면서도 공은 모두 동료 의사들에게 돌린다.

      “보령의료봉사상은 저 혼자 받는 상이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잘해서 받는 게 아니라 나눔에 뜻을 품고 실천하는 의사들을 대표해 상을 받을 뿐이죠. 요즘 크고 작은 이슈들로 많은 사람이 의사를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사명감으로 환자를 돌보고, 선의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의사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했지만, 봉사활동만큼은 널리 알리려는 것이고요. 제게는 지금까지 걸어온 수많은 길이 있고, 앞에도 여러 갈래 길이 놓여 있습니다. 큰 길이면 모여서 가고, 작은 길은 나누어서 각자의 길을 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종착지인 ‘행복’에 모두 닿아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의사와 그 길에서 만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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